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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이야기
강현미 글 / 신가영 그림
136쪽
ISBN 9788957340684 73810
2017년 11월 7일 발행
값 12,000원

올해는 몽양 여운형 선생이 19477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 한지근의 총탄에 맞아 운명을 달리한 지 70주년 되는 해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조국의 분단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죄우합작 운동을 벌인 여운형 선생은 극우와 극좌,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해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독립운동에 평생을 투신하고도 오래도록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해, 건국훈장도 2005년에야 받게 되었다.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여운형 선생은 조부모와 집안 어른들이 동학에 가담했던 영향과, 서울의 배재학당에 다니면서 접한 기독교 사상의 영향으로 개혁적인 의식에 눈을 떠 부친 탈상 이후 집안의 노비들을 과감히 해방시키는 등 봉건 유습의 타파에 앞장섰다.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감화를 받은 선생은 양평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해 웅변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양평에 광무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던 중, 남궁억 선생의 권유로 강릉의 초당의숙에서 청년 교육에 힘쓴다. 하지만 일본의 간섭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실의에 빠져 중국으로 떠난다.

중국에서 상하이 임시정부의 일을 맡아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는 일본 정치인의 초대를 받고 도쿄에서 연설을 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여운형의 변절을 운운했으나, 그는 오히려 도쿄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역설해 일본 정치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연설로 여운형은 천재 웅변가라는 찬사를 얻게 되었다. 이후 해방이 되기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이 패망할 것을 감지하고 해방 직전에 건국동맹을 설립했고, 해방 후에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나라가 분단될 위기에 처하자 좌우합작운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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