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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종해
B6 신 | 104쪽
ISBN 89-7075-231-5
2001년 9월 1일 발행
값 10,000원
개


『항해일지』에서의 치열하고 절망적인 삶을 표현했던 시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풀』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너무나도 따뜻하고, 깨끗한 서정시로 우리를 찾아온 시인 김종해. 함축된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자신은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는 따뜻한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눈물이나 이슬이 묻어 있는 듯한, 물기 있는 서정시, 너무 압축되고 함축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삶의 일상에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세상사의 중심을 시로써만 짚어내는 시인의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가 있는 시.' 이런 시가 좋다며 지은 시들이다. 저자의 시를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웬지 모를 미소가 담기고, 가슴엔 따뜻함이 가득하다. 영혼을 울리는 저자의 연륜이 느껴지는 시집이다.김종해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시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 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또한 제목이 된 '풀'처럼 그의 시는 청정한 이미지와 짧고 긴장된 함축미를 보여준다. 사실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던 그의 대표적 시집 『항해일지』는 섬뜩할 정도로 치열한 살의 인식가 상황이 장치되어 있다. 절망적인 시대의 허망한 삶의 물살을 헤쳐나갔던 그의 '항해시'들은 절망적인 현실가 상황의 알레고리였다. '내면의 시'라는 시적 태도를 견지한 <현대시> 동인이면서도 내면세계에 대한 탐닉보다 현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선명하였던 김종해 시인의 시 작업들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펴낸 『풀』역시, 비극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의 희망으로 읽힌다. 남과 더불어 살다보면 분노와 증오, 치열한 삶의 시각이 때로 자신의 주장에 얹혀지기도 하겠지만, 『풀』을 통해 시인은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의 뿌리를 다듬어 낸다. 하지만 시집의 서평을 쓴 신경림 시인의 다음과 같은 지적대로 그의 시가 치열함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이 시집의 시들이 치열함이 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에 있어서의 치열함을 '부릅뜬 눈'이나 '새된 목소리'로만 한정해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는 한, 어떠한 발상의 시도 표현이 곱고 부드럽다고 해서 시적 치열함이 덜하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의 아름다움 또는 넉넉함, 따뜻함은 '오늘 선창을 굳게굳게 닫아걸고' 또는 '휘파람새의 휘파람 소리 같은 술잔을 들이켜며/ 오늘은 내가 잠수부 학재를 떠올리는'의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 얻어진 것들이라는 점이다."

김종해 시인의 시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대답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즉 절망의 현실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되돌려 놓는 그의 시들은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가 달빛으로 전하는 환한 사랑의 미소와 같다. 그의 시집에서 사라진 것을 삶에의 치열함이 아니라, 밑바닥을 살았던 아버지의 적개심이다. 사람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케 한 것은 이번 시집이 갖는 충분한 가치가 된다. 1996년 첫 시집을 낸 이후 지금까지 시인 김종해의 지속적인 관심은 '인간'에게 있었다. 이번 시집도 예외는 아닌데, 시집 앞에 붙어 있는 「시인의 말」속에는 시인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시가 어떤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시로써 사람을 느끼며,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하고 싶은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 있는 시/ 나는 이런 시가 정말 좋다."

지금까지 그의 시세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60년대 그의 초기시에는 젊은 세대의 번민과, 그들의 꿈과 좌절이 내면화된 자아의 모습이 나타난다. 『인간의 악기』와 『신의 열쇠』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암담함이 상징화 되어 있다. 그리고 70년대의 시인은 삶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세우고 삶의 오욕에 훼절되지 않으려는 강한 의욕의 시편들로 발표한다. 김종해 시인에게 있어 70년대의 작업은 억압받는 자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된다. 그것은 장편 서사시집인 『賤奴, 일어서다』와 『왜 아니 오시나요』에서 강렬히 드러난다. 80년대에 있어서의 김종해의 시세계는 다양한 일상적 현실로 드러난다. 『항해일지』와 『별똥별』로 대표되는 시민 의식을 통하여 역사와 시대의식에 우선하는 개인적 삶의 과정이 형상화되어 있다. 90년대 그의 시 속에는 '건강함'과 원초적 '생명력'의 심벌이 되는 '어머니'가 나타나 좌절과 저랑의 현실 속에 놓인 자아를 끌어올려 주고 있다. '어머니'의 이미지는 그의 초기시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모티브이다. 이 시기 그의 시에는 밝고 강한 정신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60년대 우리 시단을 선도했던 <현대시>의 동인으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의 詩歷을 지닌 김종해 시인은 우리의 가슴속에 '항해'의 시인으로 인상깊게 각인되어 있다. 김종해의 시 속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내면 탐색보다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진솔하면서도 날카로운 서정이 깊이 배여 있다. 거짓 초월이 횡행하고, 나이가 들면 어설프게 도인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천인 오늘, 김종해 시인의 시는 젊고 감각적이며 새롭다.

저자 | 김종해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남. 1963년 '자유문학'지에 시 당선,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 데뷔. '現代詩' 동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발기위원 및 민주평통 문화예술분과 상임간사 역임. 현대문학상(1984년), 한국문학작가상(1985년), 한국시협상(1995년) 수상. 현재 문학세계사 대표,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시집으로 「인간의 악기」「신의 열쇠」「왜 아니 오시나요」「천노(賤奴), 일어서다」「항해일지」「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별똥별」이 있고, 시선집으로「무인도를 위하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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