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협상의 즐거움』을 읽는 중요한 코드는 바로 상실이다. 상실은 잃어버리는 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일을 뜻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무엇을이란 질문을 갖게 된다. 무엇을 상실했는가? 시인이 상실한 것은 고향이다. 그런데 그 상실은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상실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나타내는 상실이다. 분단 지역처럼 갈 수 없거나 수몰 지역처럼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절대적 상실이 아닌, 개발로 인한 상실이기 때문에 생각의 전환만 가져오면 치유가 가능한 상실이다. 바다가 메워지고 마을엔 유리 박물관이 이방인처럼 들어와 있지만 그곳도 또 다른 옷을 입고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향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상실의 아픔을 노래하지 않는다. 상실의 배후, 상실의 과정, 상실의 결과로 인한 파괴를 저주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복원의 의미로써 과거 지향적인 인식을 갖는 생태학적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군하고 상실 자체를 인정하는 허무주의적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