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온 정숙 시인은 삶을 뜨겁게 달구고 싶은 열망과 여성적인 기다림의 미학을 뿌리와 줄기로 자신의 생명력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데 무게 중심을 두는 시인이다. 주로 대상(사물)을 여성으로 의인화해서 도발적일 정도로 에로틱하게, 때로는 엉큼하고 능청스럽게 떠올리면서 거기에 자신의 심상 풍경을 겹쳐 보여 준다. 극단적으로는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린 듯한 원초적인 에로티시즘이 구사되고, 여성으로서의 정한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풍자와 해학, 경상도 사투리가 지니는 질박한 정서, 걸쭉한 입담을 곁들여 시 읽기의 즐거움을 색다르게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러나 거침없는 외양의 이면에는 그 반대의 정서가 자리매김하고 있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바로 이런 점이 시인 특유의 개성을 강화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겉모습의 안쪽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짙은 페이소스가 저며 있으며,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전통적인 여성상이 각인돼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련의 시편들은 시듦이나 져버림에 처연한 마음을 끼얹고 대상을 더욱 너그럽게 끌어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와 삶의 새 지평을 향해 거듭나려는 꿈에 뜨겁게 불을 지펴 보듬는 것으로 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