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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고은
228쪽
ISBN 89-7075-102-5 03810
1996년 12월 16일 발행
값 6,500원
개

고은의 사랑에 관한 아포리즘
한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그대’라는 말,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말,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가 이슬처럼 맺힌다.
사랑을 잃은 이에겐 따스한 위로의 찻잔이 되고, 사랑에 눈먼 이에겐 지혜의 등불이 되고, 사랑에 빠진 이들에겐 감미로운 속삭임으로 와 닿는 고은의 사랑에 관한 단상.

내용
밤비 멈추고 낙숫물소리 두어 개
밤비소리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그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그 빗속에 나 자신을 넣어서 언제까지나 헤매이게 하는 것 같은 상상을 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비, 그것이 될 수 있어서 그런 사람이 사랑한다면 비에 젖은 사랑이 될 것이다.
대낮 하루를 아무런 가책도 없이 한 줄기의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간 사람에게는 빗소리 같은 것을 들어야 쓸데없다. 비오는 밤에 비를 맞지 않고도 가장 오랫동안 젖어있는 사람으로 릴케가 있다.
가슴이 아픈 것 같은 환상 속의 고통으로 그 낙숫물소리 두어 개를 듣다가 아무런 해결도 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낙숫물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밤 전체가 비 온 뒤에 깊어졌다. 누구를 사랑할 수도 없게 미워할 수도 없게 나 자신을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비 온 뒤의 낙숫물 소리는 그쳐버렸다. 밤비, 밤비 뒤의 낙숫물 소리, 그 뒤의 어둠, 아아 그 어둠을 환하게 불러들이는 한 알의 모래알만한 내 마음…….(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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