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슬프고 감동적인 악보!
1942년 겨울, 2차 대전 당시 나치 괴뢰 정권 치하의 프랑스, 한 유대인 소녀가 황급히 가방을 싼다.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끌고 간 프랑스 헌병들이 이제 그녀와 동생을 잡으러 오고 있다. 어서 달아나야 한다. 잠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던 인형을 챙기던 아이의 손길이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는 곧 인형을 포기하고 엄마가 깨알 같은 글씨로 뭔가 열심히 채워나가던 공책을 가방 깊숙이 감춘다. 수도원과 지하창고를 전전하며 보낸 도피생활. 종전과 해방, 그리고 60년의 세월. 끝내 돌아오지 않은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그 공책을 꺼내 쓰다듬던 소녀는 이제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긴 망설임 끝에 마침내 미완성으로 남은 엄마의 유고작인 『프랑스 조곡(Suite fran?aise)』은 기적처럼 세상에 나왔다. 62년 전에 씌어진 작품이 망각의 서랍에서 기적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난해, 프랑스 문단은 커다란 감동과 충격에 휩싸였다. 광기로 가득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그 시공 속의 부끄러운 한 단면을 복원시킨 이렌 네미로프스키의 『프랑스 조곡』은 역사의 수렁에 빠진 한 시대를 통찰하고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까지도 그려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버금가는 대서사시였던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낸 이 작품에 대해 프랑스 문단은 르노도상을 수여한다. 생존작가에게만 수상 기회를 주는 관례를 깨고 사망한 작가에 문학상이 수여되는 첫 사례가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펼치는 것은 잊고 싶은 기억들이 담겨 있는 요술램프를 깨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르 푸엥 Le Point>의 서평처럼 『프랑스 조곡』은 감동적이지만 슬픈 재앙의 악보임에는 틀림없다.